2007년 11월 12일
How can I trust you?
<24>의 잭 바우어와 <프리즌 브레이크>의 스코필드가 끊임없이 외쳐대는 말, "Trust me."
드라마이기에 그를 믿는 사람은 살게 되지만, 실제 저런 말을 듣는다면?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눈에 띄는 다이아를 발견한 흑인이 디카프리오에게 외쳤던 말을 하게 되지않을까?
"How can I trust you?"
절대절명의 순간에 대체 나는 당신을 왜 믿어야 하는가? 당신을 믿을 수 있는 것이 "무조건 일단 믿어보삼~"이라는 말뿐이라면 당황스럽지 않을까?
오늘 퇴근을 하여 저녁약속을 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한 외국인을 만났다. 지하철 노선도를 펼치면서 설명을 하던데 대충 들어보니 1호선 종착역인 소요산역에서 버스로 세정거장 거리에 있는 친구집에서 머물고 있다, 거기까지 가려면 8천원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돈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대충 그런 말이었다. 가뜩이나 짧은 영어실력인데 러시아어(로 들리는 말)를 간혹 섞여 사용해서 듣는데 애를 먹었는데, 결국 요지는 돈을 좀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는 무척이나 당황스러했고.
회사가 있는 서울역 주변은 노숙자들이 많았고, 지하도의 환경은 썩 좋지는 않은 곳이었지만 한번도 돈을 요구하는 사람을 만나보지는 못했다. 남대문 주변에서 동전 좀 달라고 하는 분들은 간혹 있었지만.게다가 외국인이라니. "난 당신을 오늘 처음 봤습니다. 미안하지만 당신을 믿을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다만 근처에 남대문 경찰서가 있으니 거기서 도움을 요청해보라고 말했다.그 외국인은 자기는 러시아인이고 거기 가 봤자 말은 안통한다고 "Please"를 연발했다.
나에겐 사람을 꿰뚫어보는 능력도 없고, 그 사람의 눈을 보고 진실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길건너편에서 친구는 기다리고있었고, 나의 영어는 짧았다. 그때서야 거절하고 가기엔 그 외국인의 말이 사실은 아닐까, 나의 행동이 이 사람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을 좋게 해주지 않을까, 내가 만약 같은 처지라면 나는 외국에서 저렇게 외국인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등등 그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잠깐 고민하다 내뱉은 한마디. "How can I trust you?"
나는 ID나 여권이나 기타 등등 내가 뭔가를 믿을 만한것을 좀 보여달라고 했다. 예상한 바이긴 했지만 집에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더 고민하기 싫었고, "Please"를 연발하는 그의 말에 진심이 담겨있는듯 해서, 더군다나 8천원이라는 금액또한 구체적이어서 "좋다.당신을 믿겠다."고 하며 지갑에서 만원짜리 한장을 꺼내서 줬다. 마지막 말을 좀 하고 싶었지만 뜬금없이 "Good luck"이라는 말이 나왔고,(영어공부좀 하자. --;) 마침 횡단보도 신호는 바뀌었고 해서 나는 길을 건너 갔다. 가면서 잠깐 돌아보니 지하철역 방향으로 그 외국인은 움직이고 있었다.
왜 하필 내가 걸렸을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했다. 그가 정말 집에 갈 돈이 없었던 것일까 하는 의심도 당연히 들었다. 만약 같은 한국사람이었다면 안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원이 작은 돈이든 큰 돈이든간에 이왕 주었다면 그 사람의 말이 사실이었고, 그가 집에 잘 갔기를 바랬다. 다만, 다음에 똑같은 상황에서 그 사람을 만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예전에 대학 입학하자마자 아들 등록금을 잃어버렸다며 눈물글썽이던 아저씨를 제대하고 나서도 만나게 되었을때와 같은 상황은 바라지 않으니까.
# by | 2007/11/12 22:37 | inside out | 트랙백 | 덧글(2)




